베스비2 로드윈 그리고 코멧


바이크를 탄지 이제 1년 3개월 정도 됐다. 그 전까진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내가 바이크를 탈 거라곤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미친듯한 속도로 지나다니는 바이크는 경멸의 대상일 뿐이었고, 영화에서 '자유의 상징'과 같이 나타나는 바이크가 매력적으로 보일 때도 있었지만 여전히 내겐 딴 세상 이야기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하철역도 없고 버스도 쉬어가며, 약속장소에 나가기 위해서 2시간전에 출발해야 하는 주옥같은 동네에 쳐박혀 살기 시작한 뒤로 '탈것'에 대한 욕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차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가난한 백면 서생에게 네 바퀴 달린 물건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사치품이었으니, 차선책으로 눈에 들어온 것이 스쿠터였다. 디씨 바갤을 들락거리며 스쿠터들을 눈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스쿠터라고 해도 백만원도 넘는 탈것을 산다는 것은 내게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중국펀드 막차에 통장 탈탈 털어 넣었던 그해 겨울. 양키 동네에서 부동산 대출이 어쩌느니 하면서 경제위기가 터져버렸고, 가난한 내 펀드 계좌는 -50%대로 곤두박질쳐버렸다. 그렇게 구매능력이 사라져버린 내게 스쿠터라는 꿈도 사라져 버렸다. 그 후로 이따금 '바이바이 베스파' 같은 만화를 보거나, 지나가는 바이크들을 보며 미련이 다시금 떠오르기도 했으나, 강력하게 내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그리고 여름. 처음으로 떠난 해외여행, 라오스에서 처음으로 바이크를 타볼 일이 생겼다. 가게 아저씨와 5000원에 흥정해서 빌려 탄 고물 바이크였지만 나름 기어가 달린 메뉴얼 바이크였다.


고물 바이크와 라오스 어딘가에서


반바지에 쓰레빠, 헬멧도 없이, 무서워서 시속 40킬로도 내지 못하고 달렸지만, 그 날 새로운 세계를 만나버렸다. 뜨거운 엔진열과 약간의 진동을 느끼며 왜 바이크 타는 걸 라이딩이라고 하는지 이해할듯한 그 느낌. 혼자 떨어진 낯선 세계에서 마음 가는대로 돌아다닐 수 있게 해준 잊을 수 없는 그 녀석. 언젠간 제대로 바이크를 타고 다른 나라를 여행해보고 싶은 꿈을 갖게 해준 녀석.

여행에서 돌아온 뒤, 스쿠터에 대한 욕구가 다시 불타올랐다. 또다시 디씨 바갤을 돌아다니고 인터넷을 뒤졌다. 욕구와 현실적 능력이 합의한 바이크는 국산 스쿠터 베스비였다. 여름이 지나갈 무렵, 지하철을 타고 퇴계로에 내려 한참을 걸었고, 많은 바이크들을 보았고, 돌아올 땐 까만 '베스비'와 함께였다.

첫 스쿠터 베스비2 08년식


내 첫번째 스쿠터, 베스비2 08년식. 중국에서 제조한 대림의 OEM 스쿠터. 국산 바이크가 늘 듣는 소리지만, 베스비도 역시 가격대비 성능면에서 괜춘한 평을 들었던 스쿠터였다. 물론 싸구려 부품이나 마무리 부실로 문제가 많기는 했다. 낮은 쇼바, 50km만 달리면 E를 가리키는 주유게이지, 무브볼 불량으로 출발시 진동, 램프 불량 등... 특히 주행중에 나사풀려서 돌아가버리는 백미러는 최악이었다. 수리 때문에 속썩인 일이 많아서 '역시 바이크는 일제!' 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게 했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럭저럭 괜찮은 스쿠터였고, 내 생애 첫 바이크가 되어준 고마운 녀석이었다. 연비는 약 28km/L 정도. 스쿠터였던 만큼 조작은 편했고, 초반 가속은 적당했다. 최속은 실제 90km정도였을 듯 하다. 계기판으로는 120km까지도 나왔지만 워낙 구라 속도계라서.. 100km가 넘는 장거리도 몇 번 다녀왔는데 별 문제 없이 잘 달려주었다. 트렁크가 좀 작아서 밥통을 달았는데, 메뉴얼을 타는 지금은 참 부러운 수납공간이었다. 초보시절 좌회전하다가 슬립한 이후로는 무서워서 눕히지를 못했다. 어떤 사람덜은 베스비로 무릎도 긁던데..ㄷㄷ.. 가을에 만나서 다음해 여름 헤어질 때까지 베스비와 3400km 정도를 달렸다. 녀석을 데려간 새주인은 전국일주를 계획하고 있던데 무사히 잘 달려주었는지...

처음 스쿠터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스쿠터라면 다른 바이크보다 좀 더 안전하게 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그렇기에 스쿠터를 타면 안전장비는 소홀하게 해도 괜찮을 듯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스쿠터라고 해서 다른 바이크보다 덜 위험한 것도 아니고, 사고나면 스쿠터라고 덜 다치지도 않는다. 풀페이스에 무릎, 팔꿈치보호대 모두 하고 스쿠터를 타다보니.. 이럴바에 메뉴얼 바이크로 바꿔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침 바이크의 세계로 들어온 이후, 스쿠터 말고 다른 바이크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래서 베스비를 팔기도 전에 메뉴얼 바이크로 기변을 감행했다. 이번엔 대림의 대표적인 125cc 네이키드 바이크인 로드윈. 얘는 200만원도 넘는다. 이번에도 박스 깠다. ㅠ_ㅠ

첫 메뉴얼 09년식 VJ-125 로드윈 인젝션

메뉴얼 바이크에 처음 매력을 가지게 된 것은, 길에서 마주친 파란 네이키드 바이크 때문이었다. 베스비를 타던 때라서 기종은 알 수 없었는데 아마도 호넷이나 코멧 비슷한 바이크였던 것 같다. 주인이 잘 관리를 했는지 반짝거리던 파란 카울과 그 안의 심장을 보고 네이키드의 아름다움을 알았다. 125cc 네이키드 가운데 가장 평이 좋았던 로드윈. 사실 125cc 스포츠 네이키드는 로드윈하고 코멧뿐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코멧은 무겁다는 얘기가 있었고, r차인 cbr이나 펄아이는 자세도 불편하고, 특히 cbr은 명차라고는 하지만 정말 멸치같아서..;;

아무튼 그래서 뽑은 로드윈 09년식. 인젝션이 적용된 신차인지라 연비나 최고속의 향상도 기대했는데 크게 나아지진 않은 것 같다. 다만 달리는 바이브레이터라고 불릴 만큼 진동이 심하다고 하는데, 인젝션 신차여서인지 진동은 그리 심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물론 어느정도 떨리긴 떨린다..;; 초반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찐빠가 나서 사업소에서 수리한 이후로 다른 문제점은 없었다. 베스비 밖에 안타봐서인지는 몰라도 완성도면에서는 별다른 불만은 없다. 가속은 좀 느린 편이고, 최고속은 평지 110km 정도. 내리막에서 레드존치면 120km는 넘을 듯 하다. 125cc 바이크로는 적절한 성능과 완성도를 가졌다. 디자인은 다 좋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좀 허전해보인다. 125cc이니 너무 크거나 무게가 나가는 것도 좋진 않겠지만, 측면에서 볼 때 엔진룸이나 헤드라이트가 빈약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아무튼 첫 메뉴얼로는 손색이 없는 좋은 바이크다. 길들이기 하느라 여름을 다 보내서 아직 그렇게 많은 곳을 다니지 못했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내 발이 되어줄, 함께 바람을 맞아줄 로드윈.




...2종 소형 합격할 때까지..;;

솔직히 지금도 기변병이 들었다. 묵직하고 가속도 충분한 250cc로 기변하고 싶다. ㅜㅜ


내년 여름엔 꼭 기변하리라..





혼다의 VTR250.
디자인, 성능 모두 눈에 들어찬다. 다만 크기와 가격. 신차는 혼다 코리아에서 수입도 안하고, 수입한다 해도 600만원이 넘을 것이고, 중고는 구하기도 힘들며.. 결정적으로 로드윈과 크기가 비슷하다. 사진에서 여성 라이더가 타고 있는데 크기가 적절하니, 내가 타면 작아보일 듯... 그래도 바이크 이쁘다.






S&T의 코멧 250n 인젝션 10년식.
09년부터 새로운 디자인의 네이키드 코멧이 나오기 시작했다. 로드윈과 달리 꽉찬 엔진룸과 묵직한 크기, 그리고 신형에서 적용된 비키니 카울과 리어 부분의 디자인. 가격도 300만원대로 적당한 편이고 디자인도 맘에 든다. 코멧은 무게와 밸런스 문제가 많다고들 하는데 타보질 않아서 모르겠다. 그래도 벌써 나온지가 몇년인데 이제 왠만한 문제점은 다 고쳐졌을 거라 생각된다. 현실적인 나의 드림바이크. 이쁘다. 하악 하악~

이건 수출형 코멧 650n.
최고다. 이 정도 디자인이면 더 바랄 게 없다. 다만 국내에선 안판다는 거. 게다가 650cc라서 내가 타고다니기엔 너무 배기량이 크다. 유지비도 많이 들테고. 그래도 정말 이쁘구나. 250cc도 저렇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그럼 더 비싸겠지? ㅠ



by knocking | 2009/12/08 22:47 | 바이크 | 트랙백 | 덧글(7)
트랙백 주소 : http://portuga.egloos.com/tb/249086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라쿤J at 2009/12/08 23:49
아........요, 욕망이, 다시 두바퀴에 대한 욕망이...........!!orz
Commented by knocking at 2009/12/09 09:32
지르세요. 그러면 욕망이 사라지...지 않고 더 커집니다. ㄷㄷㄷㄷ
Commented by junhalee at 2009/12/09 09:54
오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라졌던 바이크에 대한 욕심이 새록새록...
흠... 좀 당기는데요.. ㅎㅎ

그래도 조심히 안전운행하시길~
Commented by knocking at 2009/12/09 10:00
옙! 조심해서 타겠습니다! 확실히 오도방 타면 위험할 때가 종종 있어요. 감사합니다~ ㅎ
Commented by 朴思泫 at 2009/12/12 07:25
저는 현재 9년된 대림의 트랜스업을 타고 있지요. 저도 요근래 매뉴얼 바이크인 데이스타나 미라쥬로 바꾸고 싶어지네요....

제 스쿠터로 문경새재 다녀오면서 으으 절실함을 느꼈죠 ㅜㅜ
Commented by knocking at 2009/12/12 23:26
우와 문경새재까지 다녀오셨군요. 부럽습니다. 내년 여름엔 저도 좀 멀리 가보고 싶네요. 스쿠터 타면 메뉴얼 타고 싶고, 메뉴얼 타면 스쿠터 타고 싶고 그런 것 같아요. 그래도 메뉴얼이 좀 더 재미있더라구요.
Commented by 朴思泫 at 2011/07/05 06:34
보통 육반이랑 둘반이랑은 차대가 틀려서 무리입니...................

그래봐야 밀쥬육반이나 코멧육반은 차대가 같더군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흠..
by knocking
Calendar
카테고리
전체

日步
음악
영화
여행
야구
스크랩
바이크
공부용
미분류
태그
포화속으로 키퍼서덜랜드 씨네21 강동우 응원가는 드림하이 요정은간다 시네21 마우스랜드 박치기 아야소피아 그래도 네이키드 코멧250n 터키 코멧 전문가평점 박정진 로드윈 복수 우리학교 잉여인간 덕클락 최강 바이크투어 이스탄불 전경 야신 ae-1 달빛요정
전체보기
최근 등록된 덧글
안녕하셨어요? 저는 잘 ..
by knocking at 12/20
어떻게 지내시나요? ^^ ..
by junha at 07/11
ㅎㅎㅎ 잘 될리가 있나요?..
by junha at 07/12
보통 육반이랑 둘반이랑..
by 朴思泫 at 07/05
일은 잘 되시죠? 맨날 저..
by knocking at 07/03
그런 것 같아요. 근데 ..
by knocking at 07/03
뭘 타느냐가 문제가 아니..
by knocking at 07/03
사고가 난다면 위험한 건..
by knocking at 07/03
고생이 많으십니다. 편..
by junha at 07/02
감안하고 감수하고 타야..
by laico at 07/02
라이프로그
보헤미안 (Bohemian)
보헤미안 (Bohemian)

떠돌이 별 임의진의 쿠바 여행
떠돌이 별 임의진의 쿠바 여행

원스
원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Lucid Fall (루시드 폴) 3집 - 국경의 밤
Lucid Fall (루시드 폴) 3집 - 국경의 밤

rss

skin by zodiac47